세월호 참사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에서 사건을 접하다 보니 한국에 있던 사람들만큼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한 부분이 있을 거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적어도 나는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과 비리 탓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가 일어났고,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일어난 이 사고의 희생양이 바로 죄 없는 아이들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에 내려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여러 가지 행정적 이유로 빨리 연결이 되지 않았고, 유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은 현장에서 경험하는 것과 대중매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느꼈으며, 자신들의 의도와 진심이 오해받는다는 생각에 상처를 받고 대화를 단절하고 언론과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된 듯했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2014년 여름, 한국에서 처음으로 트라우마 세미나를 기획하면서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된 나에게 많은 기자들은 미국의 911 테러와 세월호 참사가 어떻게 다른지 질문했다. 911 테러와 세월호 참사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출처: www.pri.org 뉴욕에 위치한 9/11 Memorial & Museum 내에 있는 희생자들의 추모사진
세월호와 911: 누가 가해자인가? 가해자에 대한 규명
미국의 911 테러는 외부의 적에 의한 공격이고, 세월호 참사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와 안전 불감증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다. 따라서 뉴욕 시민을 포함한 미국 국민들은 외부의 적에 대항해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반면, 세월호 참사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명확한 규명과 대응이 신속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명백히 분노를 표출할 대상에 대한 이견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처를 입힌 적에 대항해 피해자들과 국민들이 하나로 뭉치는 경험을 할 수 없었다.
출처: JTBC, 뉴스핌/ 생전 대리운전으로 생계 유지했던 김관홍 잠수사 “저희가 양심적으로 (수색현장)에 간게 죄입니다.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세월호와 911: 재난대처시스템 비교
두 참사의 공통점은 자발적으로 구조 현장에 가거나 어떤 식으로든 물심양면으로 도우려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을 조직적으로 현장에 투입해 도와주려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게 하는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구조 현장에서 민간 잠수부들이 해경의 신호가 떨어지지 않아 빨리 구조하지 못했던 것이며, 자원봉사 신청을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보다 조직적으로 자원봉사자들을 현장에 투입하는 기술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증거다. 이를 위해서는 안정기에 재난 대처 시스템을 철저히 점검해 위기 상황에 바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미국에는 트라우마 회복 네트워크가 있다. 이 조직은 재난 시 치료사들을 바로 가동해서 쓸 수 있게 만드는 자원봉사 조직으로, 일년에 3~4번 만나 서로 얼굴을 익히고, 트라우마와 재난 대처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재난이 일어나면 공지를 받은 치료사들이 현장에서 또 자신의 사무실에서 재난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을 단기간 무료로 도와준다.
이 조직은 마치 군대처럼 움직이며 협업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 평화 시에 이런 준비를 해 놓기 때문에 재난이 생기면 우왕좌왕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바로 치료사들이 현장에 연결되어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많은 한국에서는 특히 이런 조직이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가동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월호와 911: 피해자에 대한 일반인의 공감과 지지
14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뉴욕 사람들은 911에 대해 기억하고 얘기한다. 특히 매년 9월 11일이 되면 공영라디오NPR에서는 시민들이 911에 관한 어떤 얘기든 하게 하고, 이를 거르지 않고 방송에 내보낸다. 생존자들, 가족들, 구조자들, 지켜보던 시민들이 그 사건을 겪은 경험에 대해, 그 사건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며 그 얘기들은 시민들에게 받아들여지고 공감과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세월호의 경우 일어난 지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한국 사람들은 아직까지 세월호 이야기를 하느냐며 참을성 없이 반응하는 것을 본다.
출처: JTBC
상처를 받았을 때 가장 좋은 치료는 아파하는 사람을 보듬어 주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이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 판단하지 않고 받아준다는 생각이 들면 아픔이 반이 되고 그것을 극복할 용기가 생긴다. 하지만 아픈데 주변에서 계속 빨리 털어버리라고 재촉하고, 꾀병이 아닌가 의심하고, 뭔가 더 받아내려고 하는 건 아닌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면 상처는 더 깊어지고 그 상처에 더 매달리게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아무도 알아주고 기억하려 하지 않는 아픈 기억을 나라도 붙잡지 않으면 그 상처가 무가치하고 의미 없어지는 것 같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으면 그 상처와 내 고통이 물거품이 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심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은 그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다.
9/11 Memorial에 적혀 있는 “우리의 기억속에 살아 있는 당신을 하루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호와 911: 가해자 처벌
911 이후 미국은 테러리스트들 색출과 방지를 철저히 한다. 공항의 검문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까다롭게 변했고, 외국인에 대한 엄격한 심사와 차별 등을 통해 자국민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는 아직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속 시원한 처벌 방안을 내놓지 않으니 유가족들이 더 답답해 할수밖에 없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는 것만큼 마음의 치유를 돕는 것은 없다. 하지만 피해자는 명백한데 가해자는 모호하고, 따라서 가해자로부터 진심 어린사과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정부는 이 사건이 빨리 무마되고 피해자들이 잊어주기만을 바란다는 인상을 받으면 더 용서하기가 힘들고 더 강하게 타협하려 하지 않게 된다.
출처: KBS 20일 저녁 9시 뉴스 70년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근무했던 나치 경비원 요한 부라이어를 미국에서 체포했다고 보도
몇 년 전 의료사고로 심한 PTSD 증상을 발전시킨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다. 20분 정도 걸리는 아주 간단한 수술이 의사의 실수로 생명이 위독한 지경까지 간 경우였다. 이 환자를 PTSD로 몰고 간 것은 죽음의 문턱까지 간 사건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환자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사고 후 의사의 태도였다. 너무 놀란 환자와 가족들은 의사를 만나려 했으나 그 의사가 만나 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의사도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다. 그 환자는 의사가 고의로 자신을 힘들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재수 없는 사고였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의사가 자신에게 와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자신도 용서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이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병원 기록을 숨기는 등 사과는커녕 잘못을 가리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심한 배신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
리고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해야겠다는 마음에 소송을 결심했다. 결국 그 의사는 소송에서 져서 엄청난 보상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이 환자는 수술 후 약 3년 동안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고 사람이 두려워 밖에 나가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고, 집 안에서도 혼자 있지 못해 가족 중 누군가가 항상 같이 있어야 했다. 매일 누군가가 자신을 쫓아와 죽이는 악몽에 시달려 잠을 자지 못했고, 위생과 건강에 대한 강박증으로 하루에 수십번씩 샤워를 하고 손을 씻고 병균이 옮을까 봐 다른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식구들과도 신체적 접촉을 할 수 없었다.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의사가 괘씸해서 법적인 처벌을 받게 소송을 결정했지만, 승소했을 때 돈을 받는 것이 이 환자에게는매우 불편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상처와 고통은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돈을 받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과장했다고 남들이 오해하지는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그 환자가 늘 하던 말은, 지금이라도 그 의사가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면 소송을 취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즉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으니 혹은 가해자가 자신을 가해자로 인정하지 않으니, 자기라도 자신의 고통을 꼭 붙들고 아파해야 자신의 상처가 덜 억울할 것 같다고 했다.
출처: 프레시안 최형락기자: ‘저들의 일’은 언제고 나의 일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그들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세미나를 하면서 조사위원들로부터 세월호 유가족들이 정부와 심지어 특별조사위원회 사람들도 잘 믿지 않아 협상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앞의 환자와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미 사건은 일어났으니 그냥 적당히 보상금 받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유가족들은 어떤 보상도 아이들의 죽음과 상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인 보상보다는 사람들이 그 아이들의 죽음에 관심을 가져 주고, 그 아이들을 잃은 가족과 친구들의 마음이 어떤지 진심으로 헤아려 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라도 그 상처를 붙잡고 있지 않으면 이 아이들의 죽음이, 그 고통이 사람들에게서 잊힐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이 비극이 사람들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아이들의 죽음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므로 이는 절대로 일어나게 할 수 없으며,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내야 한다는 너무나 절실한 마음이 있는 것이다.
출처: Google Image 베를린에 있는 Holocaust Memorial
언젠가 베를린에 갔을 때 정부청사 근처에 있는 홀로코스트 조각상과 거기 새겨진 말들을 보고 매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원래 독일의 헌법 1조는 ‘독일제국은 공화국이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내용이었는데, 패전 이후 독일의 헌법 1조가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고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 권력의 의무다. 독일 국민은 불가침, 불가양의 인권을 모든 인간 공동체의 기초이자 이 세상의 평화와 정의의 기초로 신봉한다. 이하의 기본권은 직접 효력을 가지는 법으로서 입법권과 행정권 및 사법권을 구속한다.’ 나치와 집단이기주의로 유대인들을 포함한 다른 민족과 사람들의 인권을 유린한 데 대한 철저한 반성과 예방을 가장 중요한 헌법 1조에 새겨 넣은 것이다. 정부 청사 근처에 홀로코스트 조각상이 있다는 것에도, 이런 일을 계기로 헌법 1조를 바꿨다는 것에도 너무나 놀란나는 역시 독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100살에 가까운 전범들을 찾아내 재판받게 하고 처벌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피해자인 유대인들과 가해자인 독일인들 모두의 과거 청산 의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과거의 비극을 매일매일 일상에서 되새기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면서, 수용소에서 죽어간 유대인들의 목숨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우리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고 중요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유태인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천주교도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기독교도였으니까. 그들이 처음 나에게 왔을 때, 나를 위하여 발언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출처: http://ohrunson.tistory.com/38 [오른손이 세상을 보는 방법]
이런 관점에서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희생자면서도 한편으로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자신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안전 불감증에 큰 경종을 울리고 사회 안전 기반을 점검하여 보다 나은 사회로 가게 하는 큰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가해자 및 관련자 처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이렇게 911과 세월호에 대한 단순한 비교만 놓고 봐도 우리나라는 사회적・국가적 트라우마가 일어났을 때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명백하다. 그 결과 한국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경험했을 때 PTSD를 발전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본 내용은 [감정조절: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나를 지켜 내는 방법, 권혜경저, 을유문화사] 중 4장의 일부 내용임을 밝힙니다.

Psychology Korea 블로그는 정신건강전문가들의 참여로 이루어집니다. 동참하시는 방법은 기존에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들께서는 포스트를 공유해 주시거나, 본인이 쓰고 싶으신 주제에 대해서 작성하셔서 보내주시면 본인의 약력과 함께 칼럼을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기고하시기를 원하시는 정신건강전문가께서는 Support@psychologykorea.com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